인스타그램 쇼츠, 그리고 한 문장에서 시작된 사고

쇼츠를 보다 우연히 chuingco_phil(링크) 계정에서 소개하는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을 보게 되었다. 그 짧은 영상은 단순한 명언을 넘어서, 나 스스로에게 뭔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생각의 단초를 남겼다.

“(1) 이성적인 인간은 세상에 적응한다.
(2) 비이성적인 인간은 세상을 자신에게 적응시키려고 발버둥친다.
(3) 따라서 모든 혁신은 비이성적인 인간에 의해 일어난다.”

이 문장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두 번째는 “음 그렇지…”였고, 세 번째는 “...아?”였다. 단순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말이 아니라, 그 뒷맛이 오래 남는 문장이었다.

현대 사회의 정치적인 부분들과 연결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뉴스들로 인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지치고,
정치적 무관심으로 연결되기도 하는 것 같다. 건강한 생각들을 잃어가는 것 같아서
스스로 느끼고 생각한 점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진보 vs 보수, 그 구도가 만든 환상

오늘날의 정치 담론은 거의 언제나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에 갇혀 있다. 마치 서로가 영원한 적인 것처럼.
그러나 이 구도는 실상 매우 피상적이며, 사고를 정지시키는 장치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진보’는 무조건 좋은 것, ‘보수’는 구태의연한 것이라는 단순화
혹은 그 반대로, 보수는 지혜와 전통이고, 진보는 무질서한 실험이라는 낙인

이 모든 프레임은 결국 “나의 사고는 왜 그런가?”라는 질문을 방해한다.
우리는 사유하는 대신, 자동 반응하는 시민이 되고 있다.

‘사상 없는 주장’의 시대

현대 정치는 마치 전문성과 사상의 실종 상태에 가깝다.
각종 커뮤니티, 유튜브, 뉴스 클립은 대부분 ‘누가 누구를 공격하는 감정적 프레임만을 제공한다.

“이 발언은 말도 안 된다.”
“저쪽은 다 선동이다.”
“XXX는 매국노다.”
“이건 좌파 프레임이다.”

하지만 이러한 말들은 실상 아무 철학적 기반도, 구조적 비판도 가지지 않는다.
우리는 점점, 분노할 줄은 알지만 사유할 줄은 모르는 시민으로 퇴화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정치가 진보하지 못하는 구조적 병목이다.

부모와 미디어가 주입한 '종교 같은 정치'

어릴 적부터 나는 정치적 견해를 배우기보다, ‘받아왔다’.
부모님의 지지 세력, 커뮤니티 등을 통해 얻은 친구들의 자극적이고 뒤틀린 언행 등이 무의식적으로 내게 축적되어왔다.

“우리 집은 항상 OOO 정당 찍어.”
“뉴스는 XXX 보면 안 돼.”
“그쪽 애들은 나라 팔아먹을 애들이야.”

이건 학습이 아니라 주입이다.
더욱 심각한 건, 이렇게 형성된 정치 정체성은 의심할 수 없는 ‘신앙’처럼 고착화된다는 점이다.
질문이 없는 신념은 결국 생각을 정지시키는 독이 된다.

어떻게 해야 올바른 관점과 사고를 가질 수 있을까?

나는 다음의 방법들이 단순하지만 강력하다고 생각한다:

1) 정치 컨텐츠 대신 사상가를 먼저 보라 — 사고의 기원을 추적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전통 보수) - 보수주의의 아버지로, 전통은 시간의 지혜이며, 변화는 신중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자유주의 진보) - 자유주의의 기둥. 개인의 자유가 가장 우선되며, 표현과 토론이 진보의 수단

이런 인물들의 생각을 통해 생각이 형성된 뿌리를 이해해야 한다.

2) 문제에 대한 감정이 아닌 구조를 질문하고 훈련하자

“왜 이것이 문제인가?”, “누가 어떤 근거로 비판하고 있는가?”, “이 입장은 시간이 지나도 유효한가?”,
"이 정책은 왜 통과됐는가?", "정당은 왜 그렇게 움직이는가?", "어떤 이해관계가 연결되어 있는가?",
"이 법은 어떤 구조에서 통과되었는가?", "그 결정은 어느 시스템에서 작동하는가?",
"내가 이 말에 왜 동의하는가?", "이 비판은 구조적인가, 감정적인가?", "이 말은 누가 왜 퍼뜨리는가?"

개인의 정치 철학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 분석과 사유의 반복을 통해 비로소 ‘내 것’이 된다.

3) 정치 뉴스 대신 정치 시스템을 공부하자

대한민국 국회의 법안 통과 구조, 미국의 상하원/대통령 견제 구조, 언론사와 정당의 자금 흐름 구조 등,
이런 것들을 이해할 때 비로소 뉴스는 ‘이슈’가 아닌 ‘맥락’으로 읽히기 시작한다.

4) 나의 정치적 입장을 항상 유보하자

정치는 팀도 아니고. 팬심도 아니어야 한다. ‘보류된 판단력’은 사유하는 시민의 자산이다.

진보는 ‘다른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시작된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혹시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고 느끼는 순간, 또는 나의 견해가 비판받고도
‘왜 그런가?’라고 되묻는 태도, 이것이야말로 가장 깊은 의미에서의 진보가 아닐까.

나는 앞으로도 진보나 보수, 좌파나 우파라는 기표에 갇히지 않고
사고하는 정치적 존재로서, 구조를 읽고 근거를 찾고 의미를 묻는 삶을 살겠다.

정치를 정치인만 사유하지 않는 세상, 시민 각자가 자신의 철학을 말하고 나눌 수 있는 일상,
건전하고 현명한 대화가 자유롭게 오가는 희망 있는 세상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