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과 배려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

내가 입사할 시기에 주간 매니저님의 공백으로, 매니저 역할을 함께 진행해야 했다.

야간 매니저님과의 소통을 통해 업무를 익혀나갔다.

하지만, 주간/야간의 생산 카테고리가 다른 경우도 많고,

코어 생산 시간이 크게 차이 나다 보니 의사소통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입사 당시 분위기를 살펴보았을 때, 주간과 야간 간에는 묘한 적대적인 분위기가 존재했었다.

주간 근무자의 실수가 야간 시프트로 넘어가, 야간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야간 근무자들이 잠든 오후 시간에는 궁금한 부분을 물어볼 담당자가 없었고,

급한 건들은 전화를 걸어 취침 시간을 방해하며 이슈를 해결하곤 했다.

이러한,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하고 싶었다.

주간 자재 관리자로서 온전히 책임져야 했던 나는 퇴근 후 남아서

야간 매니저님과 직접적인 소통으로 현재 문제들을 직시하고 분석했다.

그리고 서로에게 책임을 넘기지 않도록, 매일 발주량·미생산량·자재량 등을 정리한

주간 업무 완료 폼을 만들어 한눈에 보기 쉽게 결과를 전달했다.

또한 이슈 템플릿이나 priority template(우선순위 템플릿)을 만들어

당일 이슈나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정리해 전달했다.

야간 매니저분께서도 해당 폼과 템플릿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시스템 개선에 힘써주셨다.

그렇게 서로의 취침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고, 주·야간 업무를 매끄럽게 자동화할 수 있었다.

야근이나 초과 근무 시, 주·야간 근무자끼리 대면할 수 있는 날에는

먼저 스몰 토크를 이어가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배려와 존중이 있어야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마음이 열린다고 믿는다.


글로벌한 커뮤니케이션 경험

시니어 차장님께서 나의 열정과 노고를 좋게 봐주셔서

삼성전자 본사 전체 생산 미팅에 참여할 기회를 주셨다.

해당 미팅을 통해 큰 역할을 수행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회사 간의 업무 사이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고,

삼성전자 본사 직원들의 창구가 되어 실무와 상부 지침의 간극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직접 본사와 협력할 수 있다는 것에 강한 자부심과 성취감을 느꼈다.

그리고 인턴 최초로, 2박 3일의 출장을 갈 기회도 얻었다. 이사님께서 불러 출장 지시를 내려주셨다.

Kentucky주로 배송된 우리 패키징 완제품들에 잘못된 자재가 들어간 이슈였다.

제품 내 악세서리 코드가 약간 달랐는데 이를 정상 처리하면서

약 8천 개의 완제품이 잘못 생산된 것이었다.

그래서 삼성 본사 직원 한 분과 나를 포함한 인턴 2명, 총 3명이 켄터키 주로 날아갔다.

현지 웨어하우스에 임시 패키징 공간을 만들어 세 명이 일사분란하게 작은 컨베이어 라인을 구성했다.

첫날의 목표는 언패키징을 통한 기존 자재 분리였고,

둘째 날과 셋째 날 오전까지는 올바른 자재를 넣어 재패키징하는 것이 목표였다.

완료 시간을 대략적으로 미리 계산하고, 현지 웨어하우스 이용 시간을 확인해

실제 작업 시간을 계산했다. 최대한으로 작업을 하면 2박 3일내에는 완료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하루 12시간 정도 작업했더니 마침내 끝이 보였고, 완벽하게 리패키징 및 검수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불안했고 걱정됐던 마음이 녹아내렸고 돌아오는 비행기의 창 밖 노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유용했던 아르바이트 경험들

현지 웨어하우스에 회사 소유의 리치가 한 대 있었다.

리치는 서서타는 배터리 지게차를 말하는데 이는 4-5충 높이의 파레트 적재물을

좁은 공간에서 옮길 수 있는 대단한 발명품이다.

사내에는 리치 운전을 담당하는 직원이 1명있었다.

우리 웨어하우스에 적재된 단종된 자재나, 중요 물품들을 주로 꺼내고 넣어주는 역할을 해주었는데,

주말 특근이 있는 전날, 해당 자재가 내부 재고로 전산상 있음을 확인하고 퇴근했으나

모두가 해당 운전 직원이 휴무인 것을 예상하지 못헀었다.

그래서 생산라인에 들어가야 할 자재를 꺼내지 못하고 생산 라인 스태프와 담당자가 발을 구르고 있었다.

나는 청정원 물류창고에서 지게차를 운전한 경험이 있었다.

앉아서 타는 지게차와 리치라고 불리는 서서타는 지게차 모두 유경험자였다.

그래서 차장님께 안전 관련 매뉴얼을 듣고 직접 운전을 시행했다.

그리고 자재를 공급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웨어하우스에는 생산을 위한 자재를 적재하는 공간이 항상 부족했는데,

이를 해결하려면 주어진 공간에서 극한의 효율을 내는 것이었다.

각 파레트별 자재들을 테트리스하듯 촘촘히 안전하게 쌓아야 했고,

해당 제품들을 생산라인에서 사용할 때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순서도 고려해야 했다.

그리고, 웨어하우스에서 파레트 사이즈에 맞춰 라인을 직접 그어 파레트 적재를 최대화했다.

이전에 삼성전자 배송 보조기사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다.

배송 보조를 맡으면 아침 일찍 탑차에 배송 및 설치 스케줄과 반대로

냉장고, TV, 세탁기 등을 싣어야 하는데,

함께 근무했던 기사님의 차량은 개조된 포터 트럭이어서

공간 효율을 극대화해야 했다.

메인 기사님이 굉장히 거친 분이셨기에 거칠게 혼나며 배웠다.

커다란 냉장고를 혼자 싣는 방법부터 테트리스하듯 최대한 적재하는 감각까지, 쉽지 않았다.

이 경험이 자재 적재 공간을 최대 효율로 사용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생산 라인에 들어가야 할 팔레트 수량이 많고, 입고 물량도 많은 날에는

배정된 웨어하우스 구역이 꽉 차곤 했다.

그런 날은 생산 라인으로 팔레트가 빠지면, 해당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기존 공간을 리셋하고, 추가 라인 설정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물리적으로 할 수 공급할 수 있는 최대량의 자재를 공급하지 않았나 싶다.


진심어린 책임감과 모두를 위한 Leading

각 팀별로 한 명의 매니저와 단기 계약직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자재팀에는 한 명의 관리자인 나와 단기 계약 직원들(이하 스태프)이 상주했다.

파트타임, 풀타임 등 형태도 다양했다.

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네팔 등 국적이 다양해

서로의 문화를 배우고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스태프들 간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스케줄 관리 및 출퇴근 관리 등

모든 것이 나의 책임이자 업무였다.

갑자기 출근하지 못하는 스태프도 있었고,

불평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거나 갑자기 사라지는 스태프도 있었다.

이들을 하나로 뭉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 존중받으며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그들을 분석하기 시작했고, 그들 중에도 열정 가득한 직원들이 있었다.

각자의 업무별 장 단점이 뚜렷했고, 자재팀에는 다양한 업무가 있었기에

각 스태프에게 세부적인 개인 업무와 공통 업무를 적절히 할당할 수 있었다.

그들의 장점을 칭찬하고 격려하며 “이 부분을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했을 때,

열정있는 스태프들의 성실한 행동으로 모두가 열심히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 누구도 억지로 하지 않았고, 스태프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지속적으로 업무 방향을 수정했다.

그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독려했고, 모든 업무를 동일하게 존중했다.

올바르게 일을 수행했을 때는 적극적으로 칭찬했고, 긍정의 에너지를 전파했다.

그날의 업무가 문제없이 마무리되면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성취감을 나눴다.

매주 금요일에는 위클리 미팅을 열어 이번 주에 발생한 이슈, 잘한 점, 개선할 점 등을 공유했다.

먼저 음료를 구입해 나눠주면 스태프들도 “이번엔 내가 사겠다”며 선순환을 보여주었다.

우리 팀은 그 어떤 팀보다 적극적이고 열정적이었다.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고 확신한다.

(Charles, Sushimi Dhital, Annie, Misty, Omar, Dawit, Daniel, Euno, Sanket — 모두 너무 그립다.)

Finally

입사 후 어느 정도 적응한 시기에 자재와 관련된 모든 업무를 시니어 차장님께서 위임해 주셨다.

스스로 많은 업무 목표와 경험들을 만들어나갈 수 있게 도와주셨던

차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회사에서 책임을 진다는 것은 엄청난 위험부담을 야기시키고, 선임분들과 후임분들에게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물론, 스케일이 아주 큰 것들은 회사에서 구성원에게 일반적으로 책임을 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회피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들을 책임지고, 함께 해결하는 그 경험들은

내 인생의 역사속에 영원히 존재한다. 잊을 수 없는 성취감과 감동의 경험을 준다.

‘불가능하다’는 생각보다는 ‘가능하게 만들자’는 생각으로 여러 시도를 해보았다.

물론, 부딪히면서 힘들었던 일들도 많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래도 끝까지 하다보면, 먼지라도 생기고, 다른 방법이 눈에 들어온다.

그 또한 결과이고 경험이고, 삶의 흔적인 것 같다.

모두가 살다가 죽는다. 가장 부자는 죽기 전에 이런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앞으로도 나는 더 열심히 적극적으로 살 것이고, 행동하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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